한국 건설산업의 역사(개항기부터 80년대까지)
우리나라 건설산업의 역사를 살펴보겠습니다. 한국의 건설산업 발전에 있어 개항은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1876년의 강화도조약을 시작으로, 1880년대 초에 서양 열강과의 통상조약이 이루어집니다. 이 시기에 외국 선박의 출입과 무역량이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이에 대응할 수 있는 항만시설의 수요도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무역을 위한 외국 상인들의 이주가 증가해서 각 개항장에는 이들의 전용 숙소가 지정되었고, 이런 지역들의 상하수도 시설이나 상가시설을 포함한 신시가지 공사와 주택건설이 붐을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수입·수출을 위한 상품들의 운송량이 늘어나면서 도로와 철도 건설사업도 활발하게 전개되었는데요. 1899년에 경인철도 부설을 비롯해서 경부선·경원선·경의선 철도가 차례로 건설되기도 했습니다. 개항 후 건설사업은 근대적인 과학기술과 결부된 것이어서 종래와 같이 국가가 직영할 수 없게 되었고, 전문기업인 민간 건설업자에게 맡겨야만 했습니다. 모든 건설사업이 일본인에 의해 설계, 시공되었으며, 이러한 현상은 광복 이전까지 지속되어 이 시기에 한국인을 주체로 하는 건설업체는 극소수에 불과했습니다.
근대의 건설업: 광복(8. 15)
8·15 광복 당시 한국의 건설업에는 상당수의 건설기능공과 약간의 하도급업자, 극소수의 중·하급 기술관료 출신, 그리고 소수의 기술직과 관리직이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광복 후의 건설업은 이들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당시 미군정청에서 발주하는 주택건설과 국도 개수공사, 그리고 미군에서 발주하는 군납 공사에 의존했습니다.
근대의 건설업: 한국전쟁 이후
6·25 전쟁 이후 건설업체들은 주로 전재 복구공사를 도급받았습니다. 그리고 당시 주한미군시설의 건설에도 참여하게 되는데요. 이때 국제적인 표준양식에 의한 건설 경험을 많이 습득합니다. 이 시기까지는 건설업에 대해서 정부차원의 조정 통제나 보호육성책이 없었기 때문에, 건설업체가 무질서하게 난립되어 있었습니다. 1958년에 건설업 법을 제정해서 공포하고 건설업에 대한 면허제를 실시하기는 했지만, 건설업체의 난립과 혼란상은 여전해서 전국에 1,500개의 업체가 양산됐습니다.
근대의 건설업: 5. 16 군사정변 이후
5·16군사정변과 더불어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착수를 앞두고 부실 건설업체의 정비와 건설업체 체질 강화가 보다 시급한 정책적 화두로 대두됩니다. 정부는 1962년에 기존 건설업 법을 개정하면서 면허기준을 대폭 강화하고 1,000여 개의 건설업체를 정비하였습니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기간 중에는 정유시설이 착공되고, 비료와 시멘트 같은 기간산업이 대폭 늘어났고요. 전력과 운수 등 사회간접 자본시설도 크게 확충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건설업체들은 많은 시공경험을 쌓을 수 있었고, 영세한 건설업체들이 근대적 기업으로 성장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건설 활동이 여전히 전통적이고 노동집약적이라는 한계가 있었고, 기술과 자본에 있어서도 경쟁력이 미약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제1·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성공적인 수행으로 건설업계도 활기가 넘치게 됐습니다. 이 기간 중에 건설업계에 영향을 준 중요한 요인으로는 경부고속도로 개통, 서울 지하철 건설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지속적인 경제개발계획 추진에 따라 농지 개간사업과 각종 사회간접자본 건설, 그리고 각종 공장과 산업시설의 건설활동이 이어졌고 민간 부문에서도 호텔이나 빌딩에 대한 건설이 활발하게 투자가 되었습니다. 1960년대의 건설업은 호황을 누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근대의 건설업: 해외건설
우리나라 해외건설 사업은 1965년 태국의 파타니-나라티왓 고속도로 공사로 시작됐습니다. 1966년에 해외건설 활동이 활발히 전개되기 시작했는데요. 주로 베트남에 파견된 한국군의 군 시설이나 병원을 건립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어서 서남태평양의 미국 신탁통치령과 동남아시아지역, 그리고 북미의 알래스카에 까지도 해외진출이 전개되었습니다. 1973년에 있었던 제1차 석유파동 이후, 중동건설시장 진출도 해외시장 개척에 획기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1979년에 있었던 제2차 석유파동과 이로 인한 국제 유동성 축소, 그리고 이란과 이라크의 전쟁 여파로 중동시장의 건설수요가 급격한 퇴조를 보이기 시작합니다.
근대의 건설업: 성숙기
1970~80년대의 건설업은 가장 역동적인 산업으로, 사회기반시설의 구축과 주택, 도시건설 등으로 경제성장과 국민의 주거안정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1990년대 후반에는 건설투자가 GDP의 20%를 웃돌았고, 건설업 분야로의 취업자는 전체의 약 8%를 차지하면서 국가경제에서 중요한 위상과 역할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부터 지속된 내수경기 침체와 정부의 SOC 예산 축소, 그리고 건설업 분야의 경기 부진으로 극심한 침체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근 건설산업은 정체기에 빠진 국내시장의 대안으로 해외진출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2010년 유가 활황에 힘입어 해외건설 수주액 700억 달러를 달성한 것을 정점으로 매년 600억 달러 부근의 수주액을 유지해 오다가, 최근 들어서는 저유가의 영향으로 점점 감소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지속된 저유가로 중동시장의 수주가 줄어들고 있는 가운데 중동 플랜트 프로젝트에서 발생한 대규모 적자로 한동안 심한 몸살을 겪었습니다. 이제 중동시장 플랜트 편중에서 벗어나 다양한 인프라와 특화된 기술을 가지고 다변화된 시장으로 적극 진출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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